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괜히 말이 줄고, 어색한 미소만 지으며 분위기를 살피게 될 때가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유쾌하고 수다스럽던 나인데, 낯선 사람 앞에서는 왠지 조심스럽고 말수도 줄어드는 스스로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낯가림이 심한 사람일까? 아니면 원래 모든 사람이 낯선 상황에서는 이렇게 위축될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본 심리학 개념 중 하나가 바로 ‘낯선 것 회피 반응(Neophobia)’입니다. 이 이론은 우리가 낯선 자극이나 상황을 마주했을 때, 본능적으로 회피하거나 경계하게 된다는 걸 설명합니다.

사실 이건 우리 조상들 시절부터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본능적인 반응이에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열매를 먹지 않는다거나, 낯선 부족과는 거리를 두던 행동들이 그 예입니다.

우리의 뇌는 여전히 이런 경계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죠.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설명할 때 ‘이질성 회피(Heterophobia)’라는 개념도 함께 언급합니다. 이는 나와 다른 존재, 나와 다른 분위기,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대해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회피하려는 경향입니다. 심지어는 첫인상이 나쁘지 않아도, 말투나 스타일이 익숙하지 않으면 거리감을 느끼는 것도 이 반응의 일종입니다.

그런데 이 반응은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생리적인 반응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편도체(amygdala)라는 뇌 부위는 공포와 관련된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요, 낯선 얼굴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은 이 편도체를 자극해서 우리로 하여금 '위험'을 느끼게 만들어요. 그래서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긴장하거나 불편해지는 건 단순히 성격 때문이 아니라, 뇌가 우리를 보호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연구도 있어요. 미국에서 진행된 한 실험에서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누가 더 신뢰가 가는지 물어봤습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낯익은 얼굴, 혹은 본인의 얼굴을 합성한 얼굴에 더 높은 점수를 줬어요. 낯설지 않은 얼굴이 곧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거죠. 또 다른 실험에서는, 단지 이름의 이니셜이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호감도가 올라가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해요.

 

이런 걸 보면 우리의 뇌는 아주 사소한 유사성도 '익숙함'으로 인식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듯합니다.

 

이런 반응을 알고 나니, 낯선 사람 앞에서 긴장되는 내 모습이 좀 더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내가 너무 소심한가…"라는 자책보다는, "내 뇌가 아직 이 사람에게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죠.

 

익숙하지 않다는 건 결코 나쁜 게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되는 관계의 첫 장면이라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너무 편한 친구들도, 처음 만났을 땐 모두 낯설었어요.

그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고, 익숙함이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을 열게 되었던 거죠. 그러니 낯선 사람 앞에서 어색한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그건 오히려 사람과 관계를 신중하게 여기는 당신의 뇌가 보내는 건강한 신호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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